만해 한용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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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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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운(韓龍雲)
아명 유천(裕天). 법명 용운(龍雲), 법호 만해(萬海, 卍海).
 1879년 7월 12일 충남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에서 출생했으며 어려서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했다. 1896년 설악산 백담사 오세암에 은거하여 수년간 머무르며 불경을 공부하는 한편, 다양한 독서를 통해 서양 근대사상을 접했다. 1905년 강원도 백담사에서 연곡(連谷)스님을 은사로 하여 수계를 받고 승려가 되었다. 1908년경에는 일본에 건너가 도쿄, 교토 등지의 사찰을 순례하고 조동종(曹洞宗) 대학림(大學林)에서 6개월간 불교와 동양철학을 연구했다.

  1911년 박한영 등과 승려대회를 개최, 일본 조동종과의 병합계획을 분쇄하는 데 성공했다. 조선불교의 침체와 낙후성과 은둔주의를 대담하고 통렬하게 분석·비판한 저서 『조선불교유신론(朝鮮佛敎維新論)』(1913)을 발표하여 사상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1918년 청년 계몽 잡지 『유심(惟心)』지를 창간·주재했으며, 1919년 3‧1운동에 참가한 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3년간 옥고를 치르는 동안 세칭 「조선독립이유서」를 집필했다. 1922년 출옥한 후 강연을 통해 청년들의 각성을 촉구했고, 1924년 불교청년회의 총재에 취임했다. 내설악 백담사에서 은거하면서 쓴 시집 『님의 침묵』을 1926년 간행하여 문단에 큰 파문을 던졌다. 1927년에는 신간회의 발기인이 되어 경성지부장을 역임했고, ‘조선불교동맹’과 ‘만당’의 실질적인 지도자로 활약했다.

  50세를 전후하여 성북동 심우장에 은거하면서 1931년 『불교(佛敎)』지를 인수‧간행하여 불교청년운동 및 불교의 대중화 운동을 벌였으며 『흑풍(黑風)』(1935), 『후회(後悔)』(1936), 『박명(薄命)』(1938) 등 장편소설과 상당수의 한시, 시조를 남겼다. 그는 창씨개명을 거부했고 학병출정에 반대하다가 1944년 5월 9일 중풍으로 사망했다. 유해는 화장되어 망우리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1962년 대한민국건국공로훈장 중장이 수여되었고, 1967년 파고다공원에 비가 건립되었으며, 1973년 신구문화사에서 『한용운 전집』(전6권)이 간행되었으며 『한용운문학전집』(태학사, 2011)도 발간되어 그의 불교사상, 독립운동, 문학 활동 등에 관한 폭넓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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